[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언-2-] MC계의 대부, 이경규. | 연예계 이야기
2006.07.01 21:19

근 1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여의도 예능 라인업은 이른바 '개그맨 3세대' 의 손에서 좌지우지 되고 있다. 90년대를 전후해 각 방송사 개그 콘테스트로 여의도에 얼굴을 내민 이들 3세대들은 김용만,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박수홍으로 대표되는 'Big 5' 를 중심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독점하면서 그 위력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3세대들의 '장기집권' 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능 라인업의 '대권' 은 2세대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은 특이사항이다. 2세대들의 손에 아직도 '대권' 이 있는 이유는 두 명의 코미디언으로부터 비롯된다. 스탠딩 코미디의 대모로서 신인 개그맨 선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미화, 그리고 거칠 것 없는 'MC 군단' 의 윗자리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이경규가 바로 그들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고등학교 시절, 이경규는 문득 '코미디언' 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연극배우이자 배우 추상미의 아버지인 故추송웅 선생의 연극을 본 뒤 "추송웅 선생처럼 꽤 괜찮은 광대가 되고 싶었다." 던 그는 그 당시 각 방송국에 열풍처럼 불고 있던 '개그 콘테스트' 를 통해 여의도에 입문했다. 그 때가 1981년, 그의 나이 22살때의 일이었다.

80년대를 전후해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방송국에 발을 들여 놓은 개그맨들이 바로 김형곤, 심형래, 서세원, 김미화, 최양락 등이었고 이들은 60~70년대를 장악했던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이주일 등의 뒤를 이어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들을 우리는 흔히 개그맨 2세대, 개그 콘테스트 1세대로 일컫는다.

자타공인 최고의 개그맨들이 쏟아져 나온 이 시기에 이경규는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근 8년여의 시간 동안 단역과 조역으로 전전했던 그는 1989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의 보조 MC에 발탁되면서 단박에 스타급으로 뛰어올랐다. 주병진과 찰떡 궁합 호흡을 선보이며 <일밤> 의 시청률 견인에 선봉을 섰던 이경규는 꽁트 코미디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특출난 재능을 선보였다.

근 20년에 가까워지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와의 인연은 그렇게 이경규의 인생을 바꿔 놓고 있었던 것이다.

" 일밤? 내가 뼈를 묻을 무덤이지."



별들에게 물어봐~!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탄탄대로를 걷게 된 이경규는 당시 MBC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웃으며 복이와요> 에서 '별들에게 물어봐' 코너를 맡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캐릭터 '갱구' 로 심형래의 영구 못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그는 "별들에게 물어봐~" "띠~용" 등의 유행어와 전매 특허인 '눈알 굴리기' 를 히트시키며 MBC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이러한 꾸준한 흥행세는 1991년에 들어서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1991년, 그 유명한 <몰래 카메라> 로 60%가 넘는 시청률(MBC 집계)을 올리며 방송가의 '전설' 이 된 이경규는 "관음증을 자극한다." "방송이 갈 데까지 갔다." 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국민적인 'TOP' 이 된다. 우리에게 '쌀집아저씨' 로 유명한 김영희 예능국장과의 인연도 바로 이 때부터 시작이었고.



1991년. 그의 나이 32살에 그는 TOP이 됐고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을 수상했다. 그에겐 그 순간이 8년 무명생활의 설움을 단박에 씻어내리는, 가장 짜릿했던 희열의 순간이 아니었을지. <몰래 카메라> 의 부작용 때문에 칭찬만큼 욕도 많이 먹었던 그 해를 이경규는 어떻게 기억할까.



" <몰래 카메라> 때 김영희 국장이 날 많이 믿어줬다. '넌 재능이 있다. 너한테 모든 걸 맡긴다.' 라고 했던게 김영희 국장이었으니까. 콘티도 내가 짜봤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도 직접 내봤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고, 나는 거기에 만족한다.

 

몰카에 사회적인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비판이 무색할 정도로 재밌었으니까 됐다. 코미디는 재미고, 재밌으면 된다는게 내 철학이다.방송을 하면서 30%의 안티는 감내해야 한다. 안티가 하나도 없으면 세상사는 재미도 없고, 발전도 없다. 안티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까지 포용해 내야 한다."

 

 


재앙, <복수혈전>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1991년의 찬란한 영광을 뒤로 하고 92년 이경규는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볼 수 밖엔 없었다. <몰래 카메라> 의 전국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각본과 주연, 감독까지 맡아 내놓았던 영화 <복수혈전> 이 '재앙' 이라는 단어를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쪽박을 썼기 때문이다. 이 때 이경규는 빚더미에 앉았고 4년여의 시간동안 금전적인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여의도에서 흔들리지 않는 그의 위치였다. 그는 <복수혈전> 이 망하던 그 해, 다시 한번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을 연속 수상하며 영화 실패의 아픔을 달랬고 꾸준한 TV 출연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영화 <복수혈전> 의 실패를 그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은 그 얘기를 내 주된 코미디 소재로 삼지만 그 때 분위기만 해도 '이경규 죽었다' 였다. 빚만 해도 억억거렸으니 내 심정이 억억거렸던 것은 당연한 일일테고. 영화 실패 때문인지, 시청자들의 외면 때문인지 <복수혈전> 이 망한 뒤에는 TV 쪽에서도 하락세를 걸었던 것 같다. 영화 찍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TV에 안나오면 MBC 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거 아니더라고.

 

 

내가 뜰때도, 내가 웃을때도, 내가 망할때도 내가 주저 앉을때도 MBC는 MBC고, 시청자는 시청자라는 것을 그 때 알았고 꼴랑 인기가지고 장난치면 바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내 인생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암흑기였지만 그 만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호동' 이라는 '복수혈전'


인생을 돌아볼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일까. 1992년 이후에 이경규는 능력있는 후배들을 양성하며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는데 이 때 그의 손에서 탄생한 이가 바로 '강호동' 이었다. 1988년 민속 씨름에 데뷔해 천하장사, 백두장사 등을 지냈던 '씨름 천재' 강호동이 이경규에 의해 TV 코미디언으로 데뷔한다는 사실은 씨름계에나, 코미디계에나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안겨다 줬다.



당시 씨름의 신(神)으로 불리웠던 이만기가 강호동의 데뷔 소식을 듣고 "아! 장차 씨름계를 이끌어 갈 인물이 사라졌구나!" 라며 탄식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사실. 그러나 씨름계의 절규에 가까운 탄식에도 불구하고 강호동은 이경규에 의해 MBC 특채 개그맨이 됐고 <소나기> 등을 히트시키며 코미디언으로도 대성했다.



특히 이경규는 강호동이 꽁트 코미디언으로 지낸다면 장수하지 못할 것임을 간파하고 그를 <일밤> 으로 불러들여 혹독한 MC 수업을 강행했다. 이제는 남 부럽지 않은 위치에 올라선 강호동이지만 이경규에 의해 인생의 방향을 틀었기에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존경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5년 SBS MC부문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이경규 선배님께 내 모든 것을 바친다." 라는 소감을 밝힌 것은 이경규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대변하고 있다.



강호동의 데뷔야말로 이경규가 대중에게 어퍼컷을 먹인 당당한 '복수혈전' 은 아니었을지.



"1991년에 씨름선수 자격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그 때 이경규 선배님을 처음 만났다. 내가 한껏 라디오에서 떠들고 나왔는데 이경규 선배님이 날 보고 '새로운 느낌의 개그맨 하나가 혜성처럼 떨어졌네!' 라고 했다. 나도 웃고, 선배님도 웃고 그냥그냥 장난으로 넘겼었는데 2년 뒤에 선배님한테 정말 러브콜이 왔다.

 

 

넌 천상 코미디언이니까 코미디를 해서 씨름을 했던 것 만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라고. 고민했지만 이 길을 선택했고 보란듯이 성공했다. 여전히 나는 내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MC 강호동)





<이경규가 간다>로 사회를 선도하다.


1991년, 1992년에 이어 1995년 다시 한번 MBC 방송 연예대상을 수상한 이경규는 1996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의 <이경규가 간다> 로 사회를 선도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코미디는 재밌으면 그만." 이라던 그의 코미디가 급격히 공익성을 띠게 된 것도 바로 이 때 부터였다.



'정지선 지키기' 라는 캠페인으로 처음 시작한 <이경규가 간다> 는 제 1호 주인공이 장애인 부부였기에 더욱 화제를 모았고 '정지선 지키기' 열풍을 불러 일으키며 예능 프로그램이 사회를 선도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증명했다. 담당 PD였던 김영희 국장과 이경규는 <이경규가 간다> 의 성공을 두고 "성공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성공했기에 값진 선물이었다." 라고 자평한다.



<이경규가 간다>는 '정지선 지키기' '적정 속도 지키기' 등 여러 캠페인을 통해 대중의 찬사를 받았고 메인 MC 이경규는 서울시 감사패, 서울시 검장상,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동국대 총동창회 감사패,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등을 수상하며 전국민적 사랑을 과시했다. <몰래 카메라> 에 이은 또 한번의 '대박' 이었고 <복수혈전> 의 아픔을 완전히 씻어내리는 성공이었다.



"96년도였지 아마. 김영희 국장이 정지선이 안 지켜진다는 신문 기사 사진 하나 가지고 오더니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는거야. 밤새 옥상 건물에서 지켜보기를 몇 번이나 하고, 밤을 꼴딱 새니까 이거 아주 사람 미치겠더라고. 그러던 어느 날 또 새벽 같이 지키고 있다가 포기하고 철수하려던 그 참에 나타난 주인공이 기억에 아주 생생해.

 

 

난 그 때 시청률 좀 띄워 보려고 김영희 국장이 연기자를 섭외한 줄 알았어. 이거 방송조작 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싶었다니까. 그런데 아니더라고. 우리가 그랬어. 그 부부는 '하늘이 준 선물' 이라고. 정말 나도 방송하면서 그 때처럼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던 때도 드물었던 것 같아. 그 때 그 일이 아직도 방송가에서는 전설처럼 떠 돈다니까."




유학과 복귀, 그리고 현재.


1998년, <이경규가 간다> 의 대단한 성공을 뒤로 하고 "휴식기간을 가지고 싶다." 는 말과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난 그는 한동안 TV를 떠났다. 이즈음에 이경규의 뒤를 이어 김용만이 MBC 예능 라인업을 장악하다시피 했고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박수홍 등 당대 최고의 MC 군단이 출범한 것은 특이사항 중 하나. 공교롭게 이경규가 유학을 떠난 시점에 이홍렬, 김미화 등이 MC 쪽에서 물러나 유학과 사업 등으로 눈을 돌렸던 것도 개그맨 3세대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90년대에 TV를 떠난 그는 2000년대가 되서야 TV에 복귀했다. 1년이 넘는 공백기가 있었으나 절친한 친구인 김영희 국장이 예능국에서 건재했기에 그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전파견문록> 등으로 쉽사리 대중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우선 당시 침체기에 빠져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를 동시간대 1위로 만들었고 <건강보감><대단한 도전> 등을 히트시키며 여전한 흥행력을 과시했다.



2002년, 2003년 후배인 김용만이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을 연속 수상하며 "MBC 예능 라인에서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감행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도 나왔지만 2004년 이경규가 MBC 방송연예대상 최우수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대역전극을 이뤘고 2005년 다시 한번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통산 5관왕의 저력을 과시했다.



김용만, 강호동, 유재석, 신동엽, 박명수, 정형돈 등이 가장 존경하는 MC 이경규의 현재는 예전과 다름없이 분주하고 화려하다.




MC계의 대부로서 그의 역할.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은 이경규를 두고 "방송가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천재" 라고 칭하면서도 근래에 그에게 보여지는 "새로움이 얹어지지 못한 진부한 진행 스타일과 예전의 연기 코드를 답습하며 신선함을주지 못하는 상투성 짙은 코미디 연기 스타일, 그리고 후배들과 진행이나 연기를 할때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권위적이며 고답적인 성격" 을 비판했다.



그렇다. 분명 그는 완벽한 MC가 아니다. 그러나 촬영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 주위를 점검하고 5시간이 넘는 아이디어 회의에도 끄떡없는 그 열정에는 요즘 사람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장인정신' 이라는 것이 스며들어 있다. "늙으니까 잠이 없어져서 그런다." 는 겸양에 사람들은 '푸하하~' 웃어버리고 말지만 그러면서도 느낀다. 그는 진짜 프로 중의 프로라는 것을.



뛰어난 코미디언으로서, MC계의 대부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한국 코미디계의 한축을 당당히 떠받치고 있는 그 이름, 이경규. 25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그의 성공시대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쭉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분이 바로 이경규 선배님이다." (MC 강호동)

 

"주위에서 모두 '넌 글렀어' 라고 할 때 이경규 선배님만이 '넌 무조건 된다' 라고 해줬다. 그 때 그 말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말 중 하나였다." (개그맨 박명수)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무리 노력해도 뒤를 ?i아갈 수 밖에 없는 이경규 선배님에게 이 모든 상을 바칩니다." (MC 김용만)

 

"언제나 앞에서 인도해 주시는 분, 이경규 선배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MC 유재석)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힘을 보태주신 이경규 선배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개그맨 정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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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1 23:40 2006/07/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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